노땐쓰 - 골든힛트 - 일집

2020. 8. 20. 22:40낡은 전축의 음악 - 대중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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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땐쓰 1집. 좌측은 소장용 미개봉, 우측은 듣기위한 개봉판>

일렉트로닉이란 것으 표현의 한 수단이다. 아니 어쩌면 한 작품을 만들어낼 재료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마치 찰흙같은 것 말이다. 그 찰흙으로 무엇을 빚느냐가 뮤지션들의 몫인데 1990년대초의 한국 전자음악계는 댄스음악이(사실 그것이 어찌 1990년대 초만의 문제겠느냐만...) 점령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전자음악에 관심을 깊이 가지던 신해철과(당장 그의 솔로 뿐만 아니라 N.EX.T의 1집만 들어보더라도 알 수 있다.) 윤상은 그 찰흙으로 빚어낼 수 있는 또 다른 시도, 어찌보면 일렉트로닉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그런 작업을 진행했으니 그것이 바로 '노땐쓰 - 골든힛트 - 일집'이다.

 

일렉트로닉 전자음악이지만 춤을 추지 말라는 노골적인 밴드명에, 과거에 무엇을 발표한 것도 없는데 '골든힛트'라고 한다. 거기에 197~80년도에서 볼 법한 참 건전한 가요 '시장에 가면'은 사실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트랙이다. 즉 모든것이 비틀고 배배꼬인 앨범이다.

 

<이만큼이나 충격적인 일렉트로닉 대중가요가 1990년대 중반에 또 있었을까?>

이 앨범의 백미는 아무래도 초반부에 몰려있다고 생각한다. 세기말 아포칼립스, 묵시록적 분위기를 가지는 'In The Name Of Justice'는 "어머니, 용서하세요...난 아무런 선택이 없어요..."하며 반전하는 분위기가 일품이다. 

이윽고 이어지는 '질주'는 빠른템포의 일렉트로닉이 마치 미궁과도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도망쳐도 도망칠 수 없는 (마치 죽은 혼령이 따라다니는 듯 한) 사랑의 상대, 과거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가사는 말 그대로 파멸로의 질주를 의미한다.

 

어찌보면 '자장가''기도'가 그 '질주'를 빚어낸 이유일 수 있겠다. 이보다 더 지독한 사랑의 상처도 없을 남자의 잔잔한 읊조림은 버림받은 상대에겐 저주와도 같을 것이다. "날 저주하렴, 차라리 흉터처럼 기억해주렴"이라는 표현은 소름돋을 정도. 그나마 '기도'는 그런 모든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올리는 참회이자 바램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백미로 꼽는 트랙은 '월광(Moon Madness)'이다.

 

불길한 색소폰의 여운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듯한 심장박동을 연상케 하는 베이스, 광기를 그대로 옮겨낸 듯한 비트에, 이 미친 존재를 제 3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한 껏 조롱하는 피아노의 선율은 90년대 대중음악의 황금기 속에서 탄생한 이 앨범이 양만이 아닌 질적, 즉 "예술적" 경지에서도 황금기를 이루어냈음을 증명하는 곡이다.

 

앨범을 통틀어 가장 비뚤어지고 기괴한, 말 그대로 미쳐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독백의 가사는 지금 읽어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널 만지고, 널 느끼고 널 구겨(=죽여)버리고 싶어." 나 "내 가죽을 벗겨줘, 내 뱃속을 갈라줘... 내 안에, 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나도 궁금해."같은 사이코패스, 광인의 뻔뻔스러운 혓바닥은 지금까지도 그 어느 한국 음악에서 느껴본 적 없는 괴이함과 공포를 너무나 고급스러운 음악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한 뮤지션을 추억하며.>

앨범 자켓처럼 '두 정신병자'의 정신세계를 담아낸(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앨범에 한해서 이 둘은 정말 스스로를 그렇게 여기고 그렇게 인식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 앨범은 분명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길이 회자될 명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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